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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밖에 없는 스위스는 어떻게 부자 나라가 되었을까?

농말임 2022. 6. 24. 22:35

오늘은 산밖에 없는 스위스는 어떻게 부자 나라가 되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.

 

1792년 8월 10일 파리의 튈르리 궁으로 성난 민중들이 몰려왔습니다 한창 프랑스 혁명이 진행 중이던 띄었습니다 2 국내 난 루이 16세와 마리 앙투아네트 왕비 가 머물고 있었습니다 엄청난 군중 숫자의 컵을 집어 먹은 왕의 크니 병들이 도망치기 시작했습니다 하지만 굳이 한 부대만이 필사적으로 분 중 감아서 싸웠습니다

 

 서로간의 사상자가 속출하자 프랑스 시민군 들이 피로를 열어줄 테리 너희 나라로 돌아가라 고 공유했습니다 하지만 이들은 그 자리에서 꼼짝도 하지 않았습니다 그 덕에 왕과 왕비는 궁을 빠져나갈 수 있었습니다 

 

하지만 곧 이 부대는 전멸했다 씁니다 모두 786 명이었습니다 이들은 스위스 용병들이 얻습니다 봄 5 으 아 이들은 분명 살 기회가 있었습니다 그럼에도 왜 이런 무모한 싸움을 한 것일까요 프랑스 왕의 대한 충성심 아닙니다 그건 조국이 너무나 가난해 있기 때문입니다 나중에 한 죽은 병사 에게서 유서가 발견되었습니다 

 

그곳엔 우리가 왕과 맺은 약속을 저버리고 도망친다면 이유 우리의 후손들은 아무도 용병으로 일하지 못할 것이라고 쓰여 있었습니다 수위 쓰는 알프스에 나라입니다 30,000 전 국토의 70% 입니다 여기에 호수를 합치면 75% 입니다 경작지가 겨우 2시 5% 뿐입니다 그마저 냉에 가심 에 농사짓기 도 어렵습니다 

 

그러니 오랫동안 스위스 는 늘 유럽에서 가장 가난한 나라 로 통했습니다 장남은 그나마 작은 땅이라도 물려받을 수 있었습니다 하지만 그 위에 형제들은 해로 먹고 살 길을 찾아 떠나야 했습니다 크게 용병 사업입니다 스위스는 가난했지만 군인들의 용맹 함은 오래전부터 정평이 나 있었습니다 대부분이 험준한 산악지대에서 살았기 때문에 폐활량이 뛰어났고 체력도 좋았습니다 

 

게다가 국경을 맞대고 있는 오스트리아 합스부르크 감과 싸우느라 많은 실전 경험도 갖고 있었습니다 스위스 용병들의 몸 값은 아주 비쌌습니다 그럼에도 모든 왕가가 급할 때면 이들을 찾았습니다 백년전쟁 부르고뉴 전쟁 스페인 폴란드 오스트리아 왕위 계승의 논쟁 나폴레옹 전쟁 등 유럽의 굵직한 전쟁 뒤에는 늘 이들이 있었습니다 로마 교황이 있는 바티칸 조차 수백 년 전부터 지금까지 경비는 오로지 스위스 용병 에게 맡기고 있습니다 왜 그럴까요 

 

이들은 절대로 고용주를 배신하지 않기 때문입니다 프랑스 혁명 때 루이 16세에 예에서 보듯 이들은 계약 을 지키기 위해선 몰 살도 감소했습니다 용병 얘기를 이렇게 말머리 사막 길게 하는 것은 스위스 가 잘 살게 된 두 가지 중요한 키워드가 이 속에 있기 때문입니다 바로 신뢰 할 수 있었다 와 비싸다 입니다 이 얘기는 뒤에서 다시 하겠습니다 수 있으 가부 기린 또 다른 중요한 키워드는 중립국 입니다 지도를 보면 수 있으 는 유럽의 거의 중앙에 있는 교통의 요충지 입니다 

 

주변에 런 프랑스 독일 오스트리아 이탈리아 등 강대국들이 특실 거립니다 이들의 이에 스위스는 툭하면 전쟁터가 되었습니다 이 때문에 수 있은 오래전부터 생존을 위해 중립국 을 추진해 왔고 19세기 초가 되어서야 국제적인 인정을 받았습니다 이렇게 되면서 다른 나라의 분쟁에 관여할 수 밖에 없는 용병 산업은 완전히 접게 되었습니다 이충 미국의 지위가 스위스 이 브 카 에 어떻게 작용 했는지도 지혜의 다시 얘기합니다 

 

이제 스위스 가 어떤 과정을 거쳐 세계에서 가장 부유한 나라가 되었는지 오직 산업 중심으로만 알아보려고 합니다 16세기 후반 프랑스의 선 위그노 전쟁이 벌어집니다 국유화 신규 간의 종교 전쟁 입니다 이때 많은 위그노 즉 신규 도드리 박해를 피해 수 있으 로 이주해 왔습니다 스위스는 칼 벤과 츠 빙글 위에 종교개혁으로 신규가 이미 굿거리 있기 때문입니다 이때 넘어온 위 구노 중엔 당대 최고의 기술을 가진 시계공 둘이 유독 많았습니다 

 

이 시기 스위스 n 보석 3곡 같은 정밀 스 공업이 발달해 있었습니다 검소한 삶 이 강조 되던 종교 개혁 분위기로 인해 이들이 대거 시계 사업으로 업종을 전환했습니다 이들이 위 근 후에 장애인들에게 시계 제작 기술을 배웠고 여기에 세공 없자 특유의 정밀 함이 더해지자 품질이 뛰어난 시계들이 쏟아지기 시작했습니다 

 

스위스는 인구가 매우 적은 날아라 무영 많이 살 길이었습니다 이런 면에서 시계는 스위스에 여러므로 딱 들어맞는 제품이었습니다 좁고 험난한 산길이 많은 나라라 부피가 크거나 무거운 제품이라면 운송이 어려워 외국에 내다 팔기 어려웠을 것입니다 하지만 시계는 작고 가벼웠습니다 그럼에도 부가가치는 엄청났습니다 

 

스위스에 상인들은 큰 가방에 시계를 가득담아 알프스 산맥을 넘어 프랑스로 독일로 이탈리아로 네덜란드로 시계를 내다 팔아 큰 돈을 벌었습니다 용병이 아니더라도 많은 사람들이 먹고 살 수 있는 수 있으 역사상 첫 산업이 탄생한 것입니다 이렇게 되자 18세기 후반에는 제네바에서 많이 만 명이 넘는 사람들이 시계 산업에서 이라며 연간 8만 5천 여개의 시계를 생산하게 되었습니다 지금 초 고가의 명품 시계로 세계를 휩쓰는 시계의 나라 스위스 가 이렇게 만들어졌습니다 스위스 용병들의 몸값이 아주 비쌌고 그럼에도 모든 왕가가 이들을 찾았다는 말을 기억하실 것입니다

 

스위스 시계가 바로 그랬습니다 스위스 시계는 비쌌고 그럼에도 높은 품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오늘날까지도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가가치가 높은 비싼 제품만 판단은 것입니다 그 비슷한 예가 또 있는데 제약 사업입니다 스위스에 제약 사업은 처음엔 염색 업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알프스에서 나는 여러 식물을 이용해 처 네가 까지 색을 물 드리던 단순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스위스 인들은 점차 알프스의 산자락에 진기한 약초가 산더미 처럼 많다는걸 알았습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들은 약초를 알약으로 만들었습니다

 

그리고 가방에 담아 알프스에 봉우리를 넘어 전 유럽에 내다 팔았습니다 약초는 쉽게 보다도 가벼웠고 부가가치 도 높아서 가방 하나 만으로도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재아 겁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늘날 수 있으 는 세계 신약 발매 1위 기업인 노바티스 항암치료제 1위 기업인 로슈 같은 세계적인 제약회사 를 갖게 되었습니다 수 있으 를 보잘것없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 시켜 준 일등 공신은 시계 와 함께 섬유산업 입니다

 

18세기 후반 영국의 방 적기를 들여오면서 스위스 는 본격적인 섬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의 대륙붕 세력으로 더 이상 취 개를 들여올 수 없게 되자 일순간 위기를 맞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스위스 는 이를 전화 이북에 기회로 삼았습니다 직접 팡 적기를 개발한 것은 물론 여기에 사상 최초로 디젤 엔진을 달아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 덕에 한때 스위스에서 미 사람은 세계 최고였습니다 수이 싼 방지 끼게 도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습니다

 

1900년 n 전체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섬유 산업에 종사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섬이 산업의 발전에 는 스위스 용병들이 큰 몫을 했습니다 유럽 각국에 용병이 파견 되다보니 각국의 시장 사정에 밟았고 이들을 신뢰하는 인맥 들도 많아 쉽게 판로를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약속 이었을 때 스위스에 지리적 위치는 독이나 다름없었습니다

 

하지만 무역의 눈뜬 스위스 에겐 교통의 요충지가 오히려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스위스는 r 프스 너머의 나라들과 교육을 늘리기 위해 19세기 초에는 도로 건설에 추력 했고 19세기 중반에는 철 도망도 대폭 늘렸습니다 이게 스위스 에겐 전혀 기대치 않았던 또 다른 산업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날의 들 수 있을 경제의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업 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유럽의 부유층 들은 해외여행 이 가능했습니다

 

19세기 말이 되어서 35 만명의 관광객이 스위스 를 찾아 알프스에 아름다움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시계와 섬유 관광과 제약 등에서 자본을 축적하게 되자 스위스는 금융업 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리고 은행 사업의 성공은 알프스에 갇힌 빈국 스위스 를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국가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스위스에 금융업 역시 프랑스에서 위그노 들이 이주해 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7세기 후반 루이 16세가 신교의 자유를 허용한 낭트 칙령을 처리하면서 제 2차 위그노 탈출이 벌어졌습니다 스위스 로운 위그노 들 중에선 신형 체력과 들이 많았습니다

 

이 그런 줄어 제노바 에서 고리대금 업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치를 일삼던 루이 16세가 이들에게 훈을 버리게 되죠 그러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자신이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절대 비밀에 부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쫓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따는게 챙피 어떤 것이죠 수 있으 행하면 예금주 와 돈의 출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비밀주의 로 유명합니다 이게 바로 루이 16세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

 

이렇게 시작된 스위스에 금융업 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이건 스위스 가 중립국 에 지위에 있었다는 점과 스위스 라면 자신들의 돈을 끝까지 지켜줄 것 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전쟁이 나자 부자들은 안전한 나라를 찾았습니다 유럽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스위스 밖에 없었습니다 스위스 은행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몰려 들었습니다 게다가 유럽에도 는 독일이 든 영국이 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

 

전쟁의 치는 순간 돈이 휴지조각 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반드시 필요한 석유를 대는 아랍 에서도 결제 수단으로 스위스 프랑을 요구했습니다 허구한날 침략을 당하던 그리고 용병 외에 먹고 살 길이 없던 이 가난한 나라에 돈이 일약 추측 통화까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긴 유럽의 부자들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살아 나왔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 가 끝으로 찾고 싶어 했던 독일 부자들이 맡긴 돈도 고스란히 수 있으 운행에 소유가 되었을 것입니다

 

현찰 많기로 소문난 유태인 의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중에 미국의 압력으로 유태 이 후손들에게 피해 보상금을 질 끔 주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스위스에 금융업 은 스위스에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의 리스크가 적은 스위스에 안정성이 부각되지 자 수많은 국제 기구들도 스위스 a 따라 자리잡았습니다 세계무역기구 국제 적십자사 국제 보건 기구 국제 도동 기구 국제 결제 은행 등 30여개의 주요 국제 기구와 250여개의 ngo 단체가 스위스에 양질의 일자리를 지금도 제공하고 있습니다

 

여기에 국제 올림픽 위원회 와 국제축구연맹 도 스위스에 본부가 있습니다 또한 구글의 핵 술 센터 를 포함한 5천 여개의 다국적 기업이 스위스에 소재지를 두고 있어 이 나라의 부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위스 가부 유해진 그 기저에는 용병 에서 보는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영세 중립국 이 되면서 오랜 세월 전쟁을 피안 덕에 지속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에 산업 흐름을 보면 또 하나의 일관성이 있습니다

 

바로 역량의 집중 아입니다 스위스에 인구는 오늘 날에도 870만 명 정도입니다 영토도 나만의 40%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작은 나라가 모든 분야의 산업을 그룹 발전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스위스 는 특정 분야의 산업 에 올인 해왔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시계 제약 섬유 관광 금융이 모두 그랬습니다 온 역량을 집중해 특정 산업의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린 다음 물건을 최대한 비싸게 파는 것 이게 스위스 가 지금까지 수백 년간 반복해 온 1입니다

 

그럼 오늘 날의 스위스 는 어느 곳에 집중하고 있을까요 얼 p r 프스 의대 자연 풍경과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바로 첨단 하이테크 산업 입니다 스위스는 크게 뭉뚱그려 얘기하면 2 공개 얘 나라입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가는 직업학교 도 다 이슈 5% 많이 진학하는 대학교도 이 공개가 절대 다수이고 절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시계 에서 시작된 정밀 기술의 전자공학을 결합해서 의료기기 선박 법인 발전설비 정밀 측정기 는 물론 우주 비행 선까지 최첨단 하이테크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

 

그리고 이 제품들은 당연히 엄청나게 비싸고 그럼에도 엄청나게 잘 팔리고 있습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부아 가치가 높은 제품만 팔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이들은 용병으로 목숨 팔아 먹고 살던 나라를 문을 날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2천 달러의 이러는 세계 최후의 부자 나라로 만들었습니다

 

스위스에서 한참 살아본 경험으로써 스위스 사람들의 가장 큰 장점은 약속을 잘 지켜서, 믿을 수 있는 사람이라는 점입니다. 

 

스위스 여행갔을때 공장도 안보이고, 마트도 6-7시면 문을 닫는데 왜이렇게 여유가 있고 부자일까 너무 궁금했는데! 깔끔한 설명 너무 감사합니다!

 

이상으로 스위스는 어떻게 부자 나라가 되었는지 정보 포스팅 마칩니다.